the freak show : 2021년을 맞이하면서
토무2021-01-01 12:44





한 해가 또 가버렸다. 2020년을 벗어났다는 안도와 동시에 시간이 또 나를 버리고 혼자 쌩하니 가버렸다는 허무함의 연례행사 시즌을 거쳐 가는 중이다. 비관하려 하지 않아도 세상이 온통 우중충하게 보이는 요즈음, 그 와중에도 빛나는 낙관주의를 소개하고자 한다.


곡을 만든 영블러드는 “우리 세대” (밀레니얼, Z세대 - 밀레니얼: 1980~1995년생, Z 세대: 1995~200n년생 (1,2년 정도의 오차 있음))의 목소리를 자처한다. 대변인이 되겠다는 게 아니라, 수많은 목소리들 중 하나라는 의미로 “영블러드는 우리 모두이다”라는 말을 종종 하곤 한다.

그의 노래들은 대부분이 사회비판적이다. 사회적 틀에 맞지 않는 화자가 주변의 시선에 괴로워하거나 주변 시선은 좆까라지 정신으로 제 멋대로 행동하는 내용이 상당히 많다. 그는 첫 번째 앨범인 the underrated youth의 수록곡 parents로 인지도를 얻기 시작했는데, 그 곡의 후렴부터가 “내 희망은 점점 사라지고 있어 저 사람들이 너무 늙었거든 … 괜찮아 우리는 살아남을 거야 부모님이 항상 옳은 건 아니니까” 와 같이 워낙 파격적이다 보니 그를 향한 기성세대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그런 그가 그 중에서도 특히 Z세대에게 인기가 많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어린 애들이 고마운 줄 모르고 지 잘났다고 화만 버럭 버럭 내고 있다고?

영블러드가 지금의 10~20대에게서 공감을 사는 첫 번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그가 사회를 향해 맥락 없이 눈 먼 칼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앞서 말한 parents의 가사에서 화자는 ADHD를 앓고 있고, 이로 인해 약을 항상 복용하고 있으며 퀴어인 그의 부모님은 호모포비아이다. 그의 다른 곡 Kill Somebody에서 화자는 깊숙한 자기혐오에 시달리며 너(화자 스스로)를 죽이고 싶다고 노래한다. 그의 곡의 주인공은 영블러드 자신이거나 사회에서 외면 받는 약자이다. 그의 주된 청자들은 영블러드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공감하고 화자가 처한 부당한 환경에 분노한다.

또 다른 이유는 앞선 parents의 후렴이 결국 “괜찮아 우리는 살아남을 거야” 라는 점에서 볼 수 있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곡들이 희망을 노래한다는 데에 있다. 그는 현세대는 인터넷을 통해 모두와 연결되어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도, 공감하기도, 이를 위해 힘을 모아 움직이기도 쉬운 세대라고 설명한다. 또한 그 어느 세대 보다 인권감수성이 풍부하고, 개인주의인 동시에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려고 애쓰는 세대라는 것이 Z세대를 향한 전반적인 평가이다. 영블러드의 외로운 화자들이 결과적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그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세상이 너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수많은 우리가 함께 하기 때문에 우리는 괜찮을 거야’가 영블러드 브랜드의 주된 테마라고 할 수 있겠다.


오늘 소개할 the freak show 역시 그 테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 곡은 2020년 12월 발매된 Weird!의 마지막 트랙이다. 코로나 때문에 앨범 발매일이 한 달 밀리는 바람에 2020년의 대미를 장식하게 되었다. Weird! 앨범의 앞선 수록곡들이 폭력적인 몰이해와 사랑에 대해 노래했다면, 이 곡은 영블러드가 청중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 중 후반부, ‘우리는 괜찮을 거야’ 에 모든 4분 25초를 바친다.

이 곡의 도입부야말로 제목에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전자음을 섞어 만든 화음으로 “내가 내일 죽는다면 오늘 밤에 내 프릭쇼 (서커스 중 ‘기형적인’ 외양을 가진 사람들을 전시하는 쇼) 에 와줄래?” 로 문을 여는 부분은 뮤지컬 록키호러쇼 (호러, SF적 요소를 섞은 뮤지컬로 다소 기괴한 분위기, 본인 안의 쾌락을 받아들이라는 내용)를 연상시킨다. 또한 곡 중간 중간 추임새로 들리는 “야야야야야야” 와 같은 부분들은 음산한 분위기과 함께 할로윈 느낌을 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음산한 부분은 1,2절에서 코러스로 바뀜을 알리는 피아노 연주에서부터 일렉이 들어오고 단조에서 장조로 바뀌면서 사라진다.

이러한 분위기의 변화는 곡 가사에서도 드러나는데, 예를 들어 1절(과 리프레인이라는데 리프레인은 코러스랑 비슷한데 코러스는 아니고 반복되는 뭐시기라는데 설명하기도 애매하고 해서 그냥 통칭 1절, 2절)에서는 “주말에는 취하고 싶어 엉망진창이 되고 친구들이랑 같이 우울해질 거야 … 열 번은 더 다쳤고 내 스스로를 해치고 … 그들은 우리처럼 되고 싶어해 하지만 우리가 한 모든 일들을 이해하지 못하지/그들은 너를 너무 두려워한 나머지 너를 바꾸려고 할거야/하지만 버텨” 와 같이 사회에서 배척당하는 괴로움을 다뤘다면 장조로 바뀌는 코러스에서는 “가짜 플라스틱 인형이 … 우리를 목 조르려고 들 거야 … 나는 보통과 같은 방법으로 이해되기를 거부하겠어/프릭쇼에 온 것을 환영해/네가 오늘 스스로를 찾길 바랄게”와 같이 정형화되지 않을 것에 대한 결심과 그 누구와도 같지 않은 나 자신을 찾기를 독려한다. 곡 제목인 프릭쇼와 연결시켜서 이해 해보자면 화자는 타인들이 기형(freak, 괴물, 남들과는 다른 것)으로 여기는 모습들이 전시되어 있는 프릭쇼에서 남들과 다른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스스로 나 자신으로 존재할 뿐인 본 모습을 찾아가는 모습을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괜찮을 거야”는 곡의 막바지인 브릿지에서 특히 더 진가를 발휘하는데, 2절 후렴이 끝나고 고요해지면서 빛이 스며드는 것 같은 짧은 땅땅땅땅(무슨 이펙트를 씌웠는지 모르겠음)과 함께 “시간은 변할 거고 너는 무너질 지도 몰라, 하지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거야 나는 믿어” 의 가사가 곡이 끝날 때 까지 반복되는 부분이 그것이다. 처음에는 영블러드의 독창에서 시작되던 것은 행진곡에서 사용되는 드럼 소리와 함께 제창가가 된다. 이어서 드럼으로 빌드업하면서 일렉이 들어오고, 마지막은 영블러드의 외침으로 끝을 맺는다. 이런 중구난방의 설명에서 알 수 있듯이 1분 40초가량의 브릿지 안에서 곡은 형태로는 세개, 자잘하게 나눈다면 다섯 개 까지의 변화를 맞이한다. 단조로울 수 있는 가사 반복이 1분 넘게 이어지면서도 지루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이와 같은 형식의 변화도 한 몫 하지만, 브릿지 내내 영블러드가 메인 멜로디를 받쳐주는 카운터멜로디를 함께 병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은 변할 거고 너는 무너질 지도 몰라, 하지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거야 나는 믿어” 를 바탕에 깔고 “나는 너를 믿어” 라고 부르짖다가 (오글거리겠지만 부르짖는다는 표현에 제일 적합하다) 맨 마지막 메인 멜로디가 사라지면서 “시간은 변할거고 너는 무너질 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내 삶을 너를 믿는 데 보낼게”의 외침으로 마무리 되는 부분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소름이 돋게 한다. 글로 쓰니까 너무 청춘만화 같이 보이지만 마무리 부분은 정말 꼭 들어봤으면 좋겠다. 들켰겠지만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다.

이 곡은 콘서트 장에서 더욱 더 돋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영블러드는 이 곡을 콘서트 마지막 곡으로 하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Weird! 앨범 서사적으로도 완벽한데다가 관객들이 영블러드의 노래들과 함께 분노하고 소속감을 느끼는 기승전결을 지나 맨 마지막에 너를 믿는다는 내용의 노래를 다 함께 부르게 된다면 감정선의 마무리로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특히 브릿지에서의 제창 부분은 떼창으로 들으면 어떨지 기대가 크다. 가수가 부르는 노래는 관객에게 닿고, 관객이 부르는 노래는 함께 부르는 다른 관객에게 닿아서 가수에게 와 닿을 때쯤에는 거대한 덩어리가 되어 돌아온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격하게 너를 믿는다는 노래를 부르고 듣는다면 그 시간만큼은 이 세상에서 못 할게 없을 것 같다.


2021년을 맞아 이 곡의 리뷰를 한 이유는 이 곡의 낙관을 본받고 또 전달하고 싶어서이다. 해가 바뀌어도 우리는 우리만의 괴로움을 안고 살겠지만 이 곡의 내용처럼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갈 스스로를 믿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나아가다 보면 2021년이 끝날 때쯤에는 어디엔가 가 있지 않을까?